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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전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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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종묘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정전입니다.

종묘는 1935년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후 이듬해 완공되었는데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입니다.
종묘는 맞배 지붕의 장엄한 건축미를 가지고 있어,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그 기운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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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에는 혼,백이라하여 혼은 하늘로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는데요
사당을 지어 혼을 모시고 
무덤을 만들어 백을 모시는 형태로 조상을 모셨습니다.
사당에서는 혼이 깃든 신주를 만들어 제례를 올렸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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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면
유교에서는 죽음 혼령이 몸에서 떠나는 것이라 말을 하는데요

몸에서 떠난 혼령이 의지할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상징물을 신주 라고 합니다.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라는 말 들어보셨죠? 매우 조심스럽게 정성스레 모신다는 의미 입니다.


##2 정전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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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은 종묘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가장 많은 신주를 모신곳입니다.
임진왜란시 한양에 진입한 왜군이 처음 종묘에 머물렀는데 갑자기 왜군이 죽는일이 발생하자
종묘는 신령이 있기 때문에 오래머물 곳이 못된다며 지금 덕수궁 맞은편 남별궁으로 옮겼다는 이야기가 전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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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측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 정전 뜰 앞에 공신당이 있는데요
공신당에는 정전에 계신 왕들의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습니다.







##3 영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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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영녕전인데요
세종3년 정전의 신실이 부족하자 정전의 신주 일부를 옮겨 모셨습니다.

정전보다 규모가 작고 아담하다. 정전보다 작다는 말이지 그 웅장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운데 4칸은 태조의 4대 조상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비를 모셨고 양쪽 보다 지붕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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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왕의 신주를 모신것은 아닙니다.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주는 종묘에 모시지 않았구요
왕위에서 쫓겨났다가 숙종때 명예를 회복한 단종의 신주는 이곳 영녕전에 모셔졌습니다.



##4 재궁을 통해 정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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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재궁인데요
왕과 세자가 머물면서 제사준비를 하던곳입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정면이 왕이 머물던 어재실이구요 우측이 세자가 머물던 세자재실
좌측이 목욕을 하던 어목욕청 입니다.

이곳에서 어 목욕청과 어재실 사이에 있는
서협문을 나와 정전으로 향했습니다.
같이 이동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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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보면 가운데가 높고 양쪽이 낮은 길이 보입니다.
가운데 길을 신로라고하는데 혼령이 다니는 길이구요
오른쪽은 왕이 다니는 어로
왼쪽은 왕세자가 다니는 세자로 입니다.


#5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데요
지금의 우리에게도 굉장히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종묘의 길을 걷는 다는 것.
그리고 그 웅장한 종묘의 정전을 볼 수 있다는것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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